● 반영적 추상화
수학의 본질은 그 추상성에 있으며 수학의 학습은 추상화하는 활동이 중심이 된다. 추상화 과정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플라톤과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다양한 해석이 있었으나, 획기적인 관점의 전환은 철학자 칸트에 의해 이루어졌다. 인간 의식을 '주체의 구성'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입장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칸트의 입장은 경험에 기초하는 것은 인식(개념)의 내용일 뿐이며 개념의 형식은 선험적인 것으로 구별하고 있다. 또한 칸트에 의하면 형식의 추상화는 그 형식의 구성이 터하고 있는 주체의 활동에 대한 정신 반성의 결과이다. 칸트의 인식론을 계기로 '구성'이라는 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으며, 피아제의 반영적 추상화 이론에 대한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피아제는 세 가지 종류의 추상화를 구분한다. 아동의 외부 대상이 갖는 성질들로부터 일반화된 지식을 끌어내는 경험적 추상화와 아동의 활동에 대한 일반적 조정으로부터 이루어지는 반영적 추상화, 그리고 아동의 활동으로부터 구성이 이루어지지만, 그 구성 결과의 확인은 외부 대상에 대해서 행해지는 의사 경험적 추상화가 그것이다. 이러한 각각의 수준의 추상화에 대하여 우정호(2000)는 다음과 같이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린 아동이 큰 사과는 작은 사과보다 무겁다는 것을 발견하였다면 물리적인 경험을 한 것이다. 그러한 성질은 아동이 작용하기 전에도 사과가 갖고 있던 성질이며, 아동이 그 성질을 단지 경험한 데 불과하다. 그와 같이, 경험으로부터 무게의 개념을 추상하였을 때 그것은 '경험적 추상화'에 의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사과를 어떤 모양으로 늘어놓고 어떤 순서로 세어 보아도 개수가 같다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아동은 논리-수학적 경험을 한 것이다. 이러한 성질은 사과 자체와는 무관한 것으로서 아동은 자신의 활동과 그 결과에 대한 경험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부터 집합의 원소의 순서와는 관계없는 원소의 개수라고 하는 개념을 추상하였을 때 아동은 '반영적 추상화'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전조작적 수준의 아동이나 구체적 조작 수준의 아동은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구성 결과에 근거하지 않고는 구성을 실행할 수가 없다. 이 경우에 그 결과의 확인이 대상에 행해진다고 하는 점에서는 경험적 추상화와 관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확인된 성질은 주체의 활동으로 그 대상에 도입된 것인바, 그것을 '의사 경험적 추상화'라고 부른다.
또한, 피아제에 의하면 반영적 추상화의 메커니즘은 반사와 반성이라는 두 가지 상보적인 과정의 나선적 교대에 의하여 진행된다. 반사는 전 단계에서 얻은 것을 보다 상위의 단계로 옮긴다고 하는 의미이며, 반사가 시작되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감각 운동적 움직임에서 출발하는 일련의 행동을 내면화하여 개념화의 시초인 표상으로 투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동에게 빨간 칩과 노란 칩들을 마음대로 늘어놓게 했다고 하자. 빨간 칩만을 계속 늘어놓던 아동이 "이제 노란 칩을 놓는다"라는 말을 했다면, 그 행동을 표상한 것이다. 행동이 내면화되었다는 것을 행동과 관련된 어떤 내적 구성이 이루어져서 이를 통해 행동을 의식하고 그 행동을 다른 행동과 결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면화 과정은 인지 발달의 모든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반사의 과정은 반드시 내면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반사가 이루어진 상위 단계에서 반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위 단계에서 사고의 도구였던 것이 사고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피아제는 이를 주제화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면, 덧셈하고 난 뒤 덧셈에 대해 반성하기 위해서는 덧셈의 과정을 새로운 사고의 대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결국 반사는 이전 단계의 행동이나 조작을 사고의 대상으로 만드는 주제화로 귀착되어서 상위 단계에서 반성을 가능하게 하는데, 반성에 의해 구성된 새로운 형식은 보다 정교해진 내용을 다시 반사할 수 있게 하므로 내면화와 주제화의 순환이 계속 반복되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반성에 의하여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과정은 동화와 조절 사이의 균형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 균형화는 하위 단계의 구조에서 야기되는 여러 가지 불균형을 새로운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필요성에 의하여 반사에 의해 다음 단계로 옮기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반성에 의하여 구성적으로 창조된 새로운 형식은 다음 단계의 반사 과정에서는 보다 세련된 내용으로 기능하여 결과적으로 끊임없는 반사와 반성의 순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수학교육에 주는 시사점
피아제의 인지 심리학 이론이 수학교육에 주는 시사점은 활동적 학습, 구체적 조작의 강조, 갈등 상황 제공, 반성적 사고의 촉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피아제에 따르면 모든 수학적 지식 및 사고의 본질은 조작이고 조작은 행동의 내면화의 산물이므로, 학습은 조작의 바탕이 되는 여러 가지 활동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수학 학습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수 개념, 도형 개념, 함수 개념, 확률 개념 등 추상화를 통한 여러 가지 개념의 획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여러 활동의 내면화로부터 반영적 추상화를 통하여 보다 고차적인 내용을 학습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피아제의 이론에 따른 지도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로, 학습자에게 구체물을 다루는 경험을 충분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 피아제에 따르면 초등학교 시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체적 조작기 수준의 아동들의 사고의 특징은, 당시에 혹은 전에 행하여진 구체적인 대상의 취급과 직접 관련되며 언어적 명제만을 다루는 형식적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부터 수학 학습의 기초가 되는 구체물의 조작 활동을 충분히 제공하여 장래 학습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로, 학습자가 인지적 불균형을 느낄 수 있는 갈등 상황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학습자의 인지 발달이나 개념의 발달은 인지적 불균형의 해소를 위한 동화와 조절의 균형화 과정이 그 바탕이 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일시적 균형 상태에 있는 학습자의 수준보다 조금 더 복잡한 상황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보다 높은 수준의 균형을 위한 동기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전조작기에서 구체적 조작기로의 발달에서 중요한 계기는 자기중심성에서 탈피하면서 모순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며, 구체적 조작기에서 형식적 조작기로의 발달은 학습자가 기존의 조작으로 해결하기 복잡한 상황에 대한 탐색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학습자에게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다소 복잡한 상황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넷째로, 학습자의 반성적 사고를 촉진하기 위한 교사의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각형의 대각선의 개수를 구하는 공식'을 지도하기 위하여 학생들에게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등의 여러 가지 다각형을 그린 다음 대각선의 개수를 구하는 활동을 하게 하였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수업의 목표는 학생들 자신이 다각형과 대각선을 그린 다음 개수를 그리는 활동에 대한 반성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찰하는 것이다.
① 한 꼭짓점에서 출발하는 대각선의 수는 자신과 이웃한 두 점을 제외한 n-3개가 있다.
② 모든 꼭짓점을 기준으로 대각선을 세면 모든 대각선은 두 번 세어진다.
학생들은 자신의 활동에 대한 반성의 결과 이러한 두 사실을 추상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결과로 n 각형의 대각선의 개수는 n(n-3)/2라는 일반 공식을 추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학생들의 반성을 강조하지 않았을 때 학생들은 자신이 했던 활동과 수업의 결과로 제시되는 최종적인 공식 사이의 관련을 인지하기 힘들 수도 있으며, 이는 활동의 효과를 반감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피아제의 심리학에 따른 학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정확한 진단과 소집단 활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피아제 자신도 언급하고 있듯이 인지 발달 단계의 연령 구분은 학습자마다 다를 수 있으며, 동일한 조건에서 학습을 수행하더라도 학습 속도는 학습자마다 다양하다는 것은 재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피아제의 이론에 따른 학습 원리의 구현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는 '학습자의 인지 발달 수준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활동을 제공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학습자들의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한 교사의 노력이 요구되며, 한편으로는 비슷한 수준의 학습자들로 소집단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아제가 설명하는 인지 발달 이론이나 추상화 이론이 어느 정도로 아동의 발달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지를 또한 고려해야 한다. 아동의 발달과 학습 과정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이 존재하므로 보다 적절한 교수·학습 방법을 찾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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